18:20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소돔과 고모라의 부르짖음이 크고 그들의 죄가 매우 중하므로

18:21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들이 행한 모든 것이 과연 내게 이른 부르짖음대로인지 아닌지를 내가 알아보리라." 하시더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 둘은 하나님의 재판대로 이행하려고 소돔으로 향하여 간다. 그러나 우주만물의 심판자는 멀리서 재판하지 않으시고, 직접적으로 함께 "내려가서" "...내가 알아보리라"라고 하신다. 창조주 아버지는 절대로 멀리서 무관심하게 행하시는 분이 아니다.

18:22
사람들이 거기서 돌아서서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앞에 그대로 있더라.

앞에 있는 것은 무엇일까? 말씀을 읽으면서 연상되는 그림은 대제사장이 성소 분향단 앞에 있는 모습이다. 본문 말씀에 대해서 내가 들어온 설교나 이야기는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두고 하나님께 중보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보 기도는 무엇일까? 어떠한 기도인가?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섰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자기 조카 롯을 "의인"으로 생각했는 지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롯을 "의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간청하는 것이었을까? 아브라함은 롯이 어떠한 사고체계를 갖고 있는 지에 대해서 너무도 알고 있었고 실제로 경험했었다. 하나님께서 롯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에 대해서도 경험한 있었다. 아브라함이 롯과 갈라서자 하나님께서는 본격적으로 아브라함을 훈련하시기 시작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롯이 의로워서가 아니라면, 아브라함은 무엇을 의지하면서 창조주 하나님 앞에 나아가 소돔을 두고 간구한 것인가?

여기서 한가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 대한 정의이다. 우리가 각자 나름 생각하는 정의가 아닌, 창조주 하나님의 "" 대한 정의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아브라함은 여기서 "의인" 두고 하나님께 나아갔을 때에, 자기 나름대로의 "의인" 개념으로 접근했을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 대해서 이미 배워가고 있었다. 창세기 15:6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에 대해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아브람이 주를 믿으니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더라." 그리고 본문 말씀인 18 19절에서 아브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창조주께서 말씀하셨음을 보았다:  "내가 그를 아나니, 그가 자기 자식들과 자기 집안 식구들에게 명하겠고 그들은 주의 도를 지켜 정의와 공의를 행하리니..."

 

공의 자체이신 하나님을 아브라함은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를 의로 여기셨다. 이제 하나님의 의를 지닌 자로서, 아브라함은 창조된 본질, 오리지널 디자인 대로 사는 피조물의 라이프 스타일이 어떠한 지를 배우고 알게 되었던 사람이다--"주의 도를 지켜 정의와 공의를 행하리니..."  주의 도를 지켜 말씀대로, 하나님의 지시사항 대로 살았을 때에,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어두운 세상에 반영되어 나타난다는 것을 언약관계를 통해서 알게 사람이다

 

창조 때에 공의 자체이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인류. 타락해서 하나님과 분리가 되었으나, 예슈아의 이루신 공로로 말미암아 회복되어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다시 있게된 피조물 인류.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 ) 땅에서 삶으로 반영하여 나타내는 아랫 ( 1:20). 보이시는 하나님을, 주의 도를 지킴으로 땅에서 보이고 나타나게 하는 회복된 피조물 인류. 이것을 "의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닐까


(***
참고성경에서 "완전한 의인" 처음으로 언급한 인물은 바로 노아이다 - 6:9; 7:1. 여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6:8 아닐까? - "그러나 노아는 주의 눈에서 은혜를 찾았더라.")

18:23 
아브라함이 가까이 다가가서 말씀드리기를 "주께서 의인들을 악인들과 더불어 멸하려 하시나이까?
18:24
혹시 성읍 안에 오십 명의 의인이 있다면, 주께서는 멸하시고 거기에 있는 오십 명의 의인들을 위하여 그곳을 남겨 두지 않으려 하시나이까?
18:25
이런 방식을 따라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는 것을 주께서 멀리하시며, 의인을 악인과 같이 여기는 것도 주께서 멀리하옵소서 땅의 심판자께서 의를 행치 않으시려나이까?" 하니

아브라함은 자기와 언약을 맺으신 분이 다름아닌 " 땅의 심판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하나님의 공의는 절대로 "의인들을 악인들과 더불어 멸하는 분이 아니라는 "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라는 분은 의인들로 인해서 악인들을 멸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우리의 인간적인 "공의" 의인은 살려야 마땅하고, 악인은 멸망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다르다--의인들로 인해서 악인들을 멸하지 않으시는 ... 이것은 하나님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한없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은혜가 아니겠는가? 이것은 또한 "의인들" 대해서 또한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인가? 창조주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대로 당신을 삶으로 반영하는 "의인들" 인해, 악인들이 회개하여 (마땅히 있어야 장소로 되돌아 와서) 창조된 본질로 회복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러한 하나님을 알아가고 있었고,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 만을 붙잡고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하나님과 완전히 에하드 되어 생각으로 중보한 것이 아닐까? 이것이 중보 기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누가 이러한 "의인"으로 있는가? 언약관계를 통해, 다시 말해서 언약의 약정을 미주알 고주알 가르쳐 주시고 말씀해 주시는 하나님의 토라, 말씀과 규례와 법도와 계명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앎으로 나의 진정한 정체성을 알게 되는 사람들이야 말로 하나님의 의를 삶으로 반영할 있을 것이다 (누군가? 예슈아의 이루신 공로로 말미암아 하늘로부터 거듭나서 완전한 피조물이 ! 내가 이제 아브라함과 같은 하나님과의 언약관계 속에서 주의 도를 지켜 정의와 공의를 행하리니...! 할렐루야, 아멘!)


18:26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일 내가 소돔 성읍 안에서 오십 명의 의인을 찾는다면, 그들을 위하여 모든 곳을 남겨 두리라." 하시더라.
18:27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보소서, 이제 티끌과 같은 내가 주께 감히 말씀드리나이다.
18:28
혹시 오십 명의 의인 중에서 다섯 명이 부족하다면, 부족한 다섯 명으로 인하여 모든 성읍을 멸하시리이까?" 하니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일 내가 사십오 명을 찾으면 그곳을 멸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18:29
그가 다시 주께 고하여 말씀드리기를 "혹시 거기에 사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하니,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사십 명을 위하여 내가 멸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18:30
아브라함이 말씀드리기를 ", 주께서는 노하지 마소서. 내가 말씀드리리이다. 혹시 삼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하니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만일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18:31
그가 말씀드리기를 "보소서, 이제 내가 감히 주께 말씀드리나이다. 혹시 거기서 이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하니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십 명을 위하여 내가 멸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더라.
18:32
그가 말씀드리기를 ", 주께서는 노하지 마소서. 내가 번만 말씀드리리이다. 혹시 거기서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하니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명을 위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더라.
18:33
주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자  자기 길을 가시고, 아브라함도 자기 처소로 돌아갔더라.

그런데... 궁극적으로 아브라함은 알았다. 조카 롯이 소돔에 거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불행하게도 의인 50명은 커녕, 의인 10 조차도 없다는 것이 비통한 현실이라는 것을...

***** Q:  열명의 의인이 하나님의 "커트라인" 일까?

현재 생각은 이러하다 (20/01/2019):
"10" 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한가지를 연상케 한다. 바로 "10개의 말씀" (히브리어로는 "계명"이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말씀"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공의를 삶으로 사는데는 사람이 혼자서 없다. 창조주께서 처음부터 남편과 아내를 서로 마주보게 하셔서 서로에게 거울이 되게 하신 것이 말해 주고 있듯이, 창조주는 가족 공동체를 통해서 당신의 나라를 이루어 가심을 있다

그런데 이야기를 통해서 말씀해 주시는 것은 (나의 생각과 제안), 하나님의 말씀을 썸머리하고 있는 "10개의 말씀" 보존하고 지키며 살아가는 의인들이 최소 10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10명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인 , 아니면 상징적으로 하나님의 "10개의 말씀"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나갈 의인들을 말씀하시는 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어쨌든 하나님의 , 하나님의 "10개의 말씀" 삶으로 사는 공동체가 존재하고 있다면, 그래서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공동체가 있다면, 주변 환경이 아무리 사악할지라도, 하나님의 빛을 발하는 의인들의 삶의 영향은 하나님 나라 차원에서는 무지막지 하다는 것을 암시하시는 같다

[
참고 ]  Q: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토라, 하나님께서 직접 손가락으로 쓰셔서 모세가 받은 "10개의 말씀" 알고 있었는가

창세기 26:4-5 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아브라함에 대해서 아들 이쯔학(이삭)에게 증언해 주시는 말씀이 답해주고 있다:
4
내가 (이쯔학) 씨를 하늘의 별들처럼 번성하게 것이며 모든 지역들을 씨에게 주리라. 안에서 땅의 모든 민족들이 복을 받으리라.
5
이는 아브라함이  목소리 안에서 듣고 명령과 계명들과 규례들과 토라들을 지켰음이니라." 하시니라.

아브라함은 알고 있었고, 지킨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