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 저녁 때 두 천사가 소돔에 오니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더라. 롯이 그들을 보고 일어나 맞이하고 그가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19:2 말하기를 "보소서, 내 주들이여, 간구하오니 종의 집으로 돌이켜 하룻밤을 묵고, 발을 씻고, 일찍 일어나 길을 떠나소서." 하니 그들이 말하기를 "아니라, 우리는 거리에서 밤을 지내리라." 하더라.
19:3 롯이 강권하니 그들이 그에게로 돌이켜서 그의 집으로 들어가고, 롯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고 누룩 없는 빵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아브라함과는 달리 롯은 이 두 사람이 하나님의 사자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한 것 같다.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잔치/식사를 베풀었으나... 잔치 상의 내용이 누룩 없는 빵 "맛짜"였으니 말이다... "맛짜"의 언급은 롯이 푸대접을 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왜 롯은 "맛짜"를 줬을까? "맛짜"는 역사적으로 한참 후에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유월절 때에 먹으라고 명령하신 누룩없는 빵이다. 그런데 왜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이야기에서 "맛짜"가 등장하는 것일까???
무언가 아이러니이다. "맛짜"는 본질이 아닌 것을 다 제거한, 누룩 없는 빵을 말하고 있다. 소돔과 고모라는 창조된 본질로부터 한없이 빗나간 인류의 극단적인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데... 그리고 그 사악함 안에 롯은 자청해서 들어가 있는데... 롯이 누룩 (보통 성경에서는 죄를 상징적으로 말할 때에 누룩이라고 한다) 없는 "맛짜"를 만들어 천사들에게 줬다는 것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
*** 몇몇 유명한 유대교 현자들은 "맛짜"의 언급이 이삭이 바로 유월절 때에 태어났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해 왔다. 유월절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이스라엘 백성의 애굽에서부터의 해방, 구속, 구출을 말해주고 있는 핵심적인 이야기이다. 그러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출애굽을 하면서 "맛짜"를 만들어 먹으라고 구원자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었다. 왜냐하면 급하게 애굽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신다. 출애굽과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유사성이 있는가? 정말 잘 모르겠다... 롯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음을 전혀 알지 못한 상황에서 "맛짜"를 만들어 대접했다. 그냥 무언가 모순이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현재로서는 이 해석이 나를 더 헷갈리게 하는 것 같다.
19:4 그러나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읍의 사람들, 곧 소돔의 남자들이 늙고 젊고 간에 그 집을 에워쌌으니 사방에서 온 모든 사람들이더라.
19:5 그들이 롯을 불러 말하기를 "오늘밤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을 우리에게로 데려오라. 우리가 그들을 알고자 함이라." 하니
19:6 롯이 문 밖에 있는 그들에게로 나가 뒤로 문을 닫고
19:7 말하기를 "부탁하노니, 형제들아, 그처럼 악하게 행하지 말라.
19:8 보라, 내게 남자를 알지 못하는 두 딸이 있도다. 내가 간청하노니, 그들을 너희에게로 데려가서,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나의 지붕 그늘 아래 들어왔으니 그들에게는 아무 짓도 하지 말라." 하니
롯의 제안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 당시 접대 문화 때문에? 소돔 사람들이 자기 딸들에게는 관심이 없을 것을 예상하고 한 제안인가?
현재로서는 멘붕~
19:9 그들이 말하기를 "물러서라." 하고 그들이 다시 말하기를 "이 자가 와서 기거하면서 우리의 재판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악하게 다루리라." 하고 그들이 롯을 밀치며 가까이 와서 문을 부수려고 하더라.
롯은 소돔 사람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음을 너무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19:10 그러나 그 사람들이 그들의 손을 내밀어 롯을 자기들을 향해 집 안으로 잡아당긴 후 문을 닫고
19:11 집 문 밖에 있는 사람들을 작은 자나 큰 자나 모두 쳐서 눈멀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으려고 애쓰더라.
19:12 그 사람들이 롯에게 말하기를 "여기에 너 외에 누가 더 있느냐? 사위와 네 아들들과 딸들과 누구든지 이 성읍에서 네게 속한 자는 이곳에서 데리고 나가라.
하나님께서 회개하고 돌이킬 기회를 계속해서 주시고 있다.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하나님의 속성...
19:13 그들의 부르짖음이 주의 면전에서 매우 크므로, 주께서 이곳을 멸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으니 우리가 이 성읍을 멸하리라." 하더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소돔과 고모라의 극심한 죄는 무엇인가? 창세기 본문에서는 이들의 성적으로 극도로 타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에스겔 선지서 16장 49-5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죄악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16:49 보라, 이것이 네 자매 소돔의 죄악이니 자만과 양식의 충분함이라. 게으름의 풍성함이 그녀와 그녀의 딸들 안에 있고 그녀가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의 손에 기운을 돋우어 주지 아니하였도다. 50 또 그들은 교만하였고 내 앞에서 가증한 짓을 행하였기에 내가 잘 보고 그들을 제거하였느니라.
19:14 롯이 나가서 그의 딸들과 혼인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일어나서, 이곳에서 나가라. 주께서 이 성읍을 멸하시리라." 하였으나, 그 사위들에게는 그가 농담하는 사람같이 보였더라.
사위들에게 보인 장인 어른:
"그가 농담하는 사람같이 보였더라." 롯이 이 도시에서 어떠한 존재인 지, 결국 어떠한 영향력도 미치지 못했는 지를 말해주고 있다.
19:15 아침이 밝아오니 천사들이 롯을 재촉하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네 아내와 여기에 있는 네 두 딸을 데리고 가라. 그래야 네가 성읍의 죄악 속에서 소멸되지 않게 되리라." 하더라.
19:16 롯이 머뭇거리고 있을 때 그 사람들이 그의 손과 그의 아내의 손과 그의 두 딸의 손을 잡았고, 주께서 그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그를 인도하여 성읍 밖에 두시니라.
무엇 때문에 롯은 머뭇거렸을까? 무엇이 그렇게도 아쉬웠을까? 무엇이 그로 하여금 주저하게 했는가?
이러한 롯과 그 가족의 손을 꽉 잡으셔서 살도록 인도하시는 주 하나님... "주께서 그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그를 인도하여..."
19:17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 그가 말하기를 "네 목숨을 위하여 도피하라. 네 뒤를 돌아보거나 어떤 평지에도 머무르지 말고 산으로 도피하라. 그래야 소멸되지 않으리라."
19:18 롯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오 내 주여, 그리 마소서.
드디어 롯이 주 하나님을 알아보기 시작한다.
그런데 온 우주만물의 심판자에게 하는 롯의 말은? "오 내 주여, 그리 마소서."
-- 이 파멸의 와중에 창조주께 이래라 저래라 라니!
19:19 보소서, 이제 주의 종이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으며 또 주께서 큰 자비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하는 것을 내게 보여 주셨사오나 내가 산으로 도피할 수 없나이다. 혹 어떤 재앙이 나를 붙들면 내가 죽을까 함이니이다.
19:20 보소서, 이제 이 성읍은 도주하기 가깝고 작은 성읍이니, 오, 나로 그곳에 도피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읍이 아니니이까?) 그러면 내 혼이 살리이다." 하니
제 생각에 이렇게 하면 제가 죽고, 저렇게 하면 제가 살 것입니다. 그러니 제 생각대로 허락 하소서.
19:21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이 일에 관하여 너를 받아들였으니 네가 말한 이 성읍을 무너뜨리지 않으리라.
19:22 서둘러서 그곳으로 도피하라. 네가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는 내가 아무 일도 할 수 없노라." 하시더라. 그러므로 그 성읍의 이름을 소알이라 불렀더라.
19:23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땅 위에 솟았더라.
19:24 그 때에 주께서 하늘에서 주께로부터 소돔과 고모라 위에 유황과 불을 비처럼 내리셨고
19:25 성읍들과 모든 평지와 성읍의 모든 거민들과 땅에 자라는 것들을 뒤엎으셨더라.
하나님은 멀리서 바라보고 계신 것이 아니라, 바로 그곳에 계셨고, 직접적으로 역사하셨다.
19:26 그러나 롯의 아내는 그의 뒤에서 뒤를 돌아보았더니, 소금기둥이 되었더라.
뒤엎고 계시는 무시무시한 파괴와 멸망 가운데서도 아쉬움, 아쉬움, 아쉬움...
파멸의 와중에서의 롯의 머뭇거림과 자기 판단; 롯의 아내의 아쉬움은 나로 하여금 이들을 비난하고 판단하기 보다, 고민하게 한다. 사도바울의 권면들을 내가 "오늘"이라고 하는 때에 선택해서 따르지 않는다면, 나도 롯이나 롯의 아내처럼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로마서 12:2 - "너희는
이
세상과
일치하지
말고 너희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도록
하라."
- 고린도후서 10:5 - "여러
가지
구상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거역하여
스스로
추켜
세운
모든
높은
것들을
무너뜨리며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서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니"
- 골로새서 3:1-3 -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으면 위에
있는 것을 구하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에
있는 것에 생각을 두고
땅에 있는 것에 생각을
두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또
너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기
때문이라."
- 빌립보서 4:8 - "...형제들아, 무슨
일에든지
참되며, 무슨
일에든지
정직하며, 무슨
일에든지
의로우며, 무슨
일에든지
순결하며, 무슨
일에든지
사랑스러우며, 무슨
일에든지
좋은
평판을
얻고, 만일
무슨
덕이
있거나
무슨
칭찬이
있으면
이런
것에
대해서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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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자기가 주 앞에 섰던 곳에서
19:28 소돔과 고모라와 평지의 모든 땅을 향하여 바라보았더니, 보라, 그 지역의 연기가 마치 용광로에서 나는 연기 같더라.
19:29 하나님께서 평지의 성읍들을 멸하실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기억하시고, 롯이 거하는 성읍들을 무너뜨리실 때 무너뜨리는 와중에서 롯을 내보내셨더라.
***** 하나님은 평지의 성읍들을 멸하실 때에 아브라함을 기억하셔서 롯이 거하는 성읍들을 파멸하실 때에 "무너뜨리는 와중에서" 롯을 내보내셨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나는 처음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기억하시고"를 통해서 여기서 한 명의 의인이 있다면 바로 아브라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의 안에 있어, 주 하나님과 에하드가 되는 이 한 의인의 중보를 통해, 하나님은 악 안에 있었던 롯을 파멸하시는 와중에서도 긍휼히 여기셔서 살리신 것이다.
더 나아가 히브리어 개념에서 "기억하다"는 표현은, 언약 관계에서 사용되어지는 표현이다. 하나님께서 기억력에 문제가 있으셔서 "기억하시고"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브라함과의 언약때문에 "헤세드" (covenant faithfulness=언약적 신실하심)으로 움직이셨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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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 롯이 소알에서 나와 그의 두 딸과 더불어 산에서 거하였는데, 이는 그가 소알에서 거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 롯이 그의 두 딸들과 굴 속에서 거하니라.
자기 판단으로 내가 사는 길, 죽는 길을 창조주 하나님께 말했던 롯... 소알이라는 작은 도시로 보내달라고 하고는 또 두려워서 산 속으로 도망한다. 창조주의 말씀이 아닌 자기 판단과 생각으로 사는 사람은 늘 두려움으로 시달리는 것이 아닐까?
19:31 큰딸이 작은딸에게 말하기를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방식에 따라 이 땅에는 우리에게 올 남자가 없으니
19:32 오라,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포도주를 마시게 하여 우리가 아버지와 동침하고 우리가 우리 아버지의 씨를 보존하자." 하며
그 아버지의 그 딸들 아닌가?
19:33 그 날 밤 그들이 그들의 아비에게 포도주를 마시게 하고 큰딸이 들어가서 자기 아비와 동침하였으나 그는 그녀가 눕고 그녀가 일어나는 것을 알지 못하였더라.
19:34 그 다음날 큰딸이 작은딸에게 말하기를 "보라, 어젯밤에는 내가 내 아버지와 동침하였으니, 오늘밤에도 아버지가 포도주를 마시게 하여 네가 들어가서 아버지와 동침하라. 이는 우리가 아버지의 씨를 보존하기 위함이라." 하니
19:35 그들이 그 날 밤도 그들의 아비로 포도주를 마시게 하고 작은딸이 일어나 그와 동침하였으나 그는 그녀가 눕고 그녀가 일어나는 것을 알지 못하였더라.
19:36 그리하여 롯의 두 딸이 아비로 인하여 아이를 가졌으니
19:37 첫딸이 아들을 낳아서 그의 이름을 모압이라 불렀더라. 그가 모압인의 조상이요, 오늘까지 이르니라.
19:38 작은딸도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벤암미라 불렀으니 그가 암몬 자손의 조상이요, 오늘까지 이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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