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6:11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하마스/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6:12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6: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하마스/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의인은 없으되 하나도 없으며” (3:10; 143:2)

그렇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인류는 의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짜딕”, 의인이라고 하셨을 때에는, 총체적으로 어떤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체성의 회복이 일어난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의인이라고 하셨고, 더 나아가 또 하나의 아주 중요한 정체성의 회복이 일어났음을 말씀해 주십니다:  노아는당대에 타밈(완전/온전)한 자라.”

 

히브리 성경을 보면 타밈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가장 처음이 바로 노아에 대한 묘사로 시작되고, 그 다음은 우리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회복된 정체성으로 사는 법을 말씀해 주십니다:  아니 엘 샤다이. 히트할레흐 레파나이 베히예 타밈.” (17:1) 이 말씀을 직역하면:  나는 엘 샤다이가슴/품의 하나님이다. 너를 위해서 내 얼굴을 향해 걸으면서(동행) 타밈/온전이 되어라.” 이 부분은 조만간 만나게 될 파라샤 본문이라 그 때 더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어쨌든 이 두 본문 말씀으로 타밈의 근본 정의를 내리신 후에, 출애굽기와 레위기에서 하나님께 드릴 제물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에 타밈해야 한다고 명령하십니다.

 

우상숭배의 제물은 신으로부터 내가 필요로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드리는 뇌물이라고 본다면, 이와 대조적으로 창조주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하나님을 향한 나의 생각과 태도를 드러내는 역할이 있고, 또 제물이 나를 대표한다는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창조주 아버지의 우리를 향한 관점은 의인이요, “타밈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창조된 디자인대로 다시 회복된 것이죠.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타밈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노아는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이고, 그 세대에서 타밈한 자였으며, 하나님과 동행아브라함도 나중에 동행했듯이—"히트할레흐,” 정체성을 알아가고 살아내기 위해 창조주의 얼굴을 향해 걸어간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구원의 방주를 믿음으로 지은 하나님의 사람이었죠.

 

이스라엘 백성이 이제 이 정체성으로 돌아와야 할 때가 되어 아버지께서 지금의 지진과 고통을 허락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 뿐만 아니라, 열방 교회도 이제 이 정체성의 충만함 (11:25)을 향해, 창조주의 얼굴을 바라보며 열심히 달려가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창조주를 닮은 인류의 회복을 위해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우리가 노아흐”—쉼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