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가을 절기의 시작:  나팔절 (욤 트루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결혼 언약식을 기억하라



말씀에 근거하여, 나팔절은 무엇을 위한 하나님과의 만남의 때인가? 레위기 23:24-25에 보면 단순히 이렇게 지시하신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그 첫 날은 너희에게 쉬는 날(샤밧)이 될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어떤 노동도 하지 말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라." 우선 나팔이라고 번역을 했는데, 실제 이 당시에는 다양한 동물의 뿔로 만든 나팔 (주로 양각 나팔) 또는 히브리어로 "쇼파르"를 사용했다. 오늘날의 트럼펫은 아닌 것이다. 또 한가지 살펴볼 것은 "기념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사건과 연관된 인물들, 그리고 이 사건이 주고 있는 의미를 기억하고 되새겨 보는 것을 "기념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 반드시 기억해야할 중요한 포인트는, “기억하다, 기념하다라는 단어는 언약관계 안에서 사용되어지는 단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출애굽기 224절에 하나님이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과 맺으신 언약을 기억하셨다고 말씀하셨을 때, 잊어버리셨다가 생각났다는 뜻이 아니라, 이제 하나님이 이 언약을 두고 역사하실 것을 알려주는 표현인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쇼파르를 불면서 어떤 언약적 사건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시는 걸까?

경을 히브리어 원문으로 보면 레위기 23:24 "나팔을 불어"라는 표현이 "트루아"로 나와 있다. "트루아" "전쟁, 위급, 기쁨을 알리는 나팔소리, 외침, 경보"를 의미하고 있으며, 직접적으로 "나팔을 불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지는 않다. 어쨌든 "트루아"는 전쟁과 경고의 소리가 될 수도 있고, 기쁨을 알리는 나팔소리 또는 외침으로도 볼 수 있다.

성경을 읽을 때에 어떠한 개념이 나타나면, 가장 기본적으로 살펴봐야 하는 것은 이 개념이나 단어가 성경 어디에서 어떤 문맥과 배경 속에서 가장 처음으로 사용되어 졌는지 주목하여 연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 어디에서 가장 처음으로 나팔 또는 "쇼파르" (양각 나팔) 소리가 등장하는가? 바로 출애굽기 19장에 처음으로 나타나고 있다.

19:10-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하게 하며 그들에게 옷을 빨게 하고 준비하게 하여 셋째 날을 기다리게 하라 이는 셋째 날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서 시내 산에 강림할 것임이니... 16-19 셋째 날 아침에 우레 (히브리어="음성들")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 (voice of the shofar)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 기슭에 서 있는데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voice of the shofar)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사건을 상기시키고자 하실 때에 그 사건과 연관된 단어 또는 단어에 실린 개념을 성경에 거듭 반복해서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절기를 말해주고 있는 레위기 23장의 나팔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히브리인들이 역사상 처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시내 산에서 "탄생"하는 장면이 바로 출애굽기 19-20장에서 묘사되어지고 있는데, 신랑이신 하나님께서는 나팔 소리와 같은 음성으로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셔서 20장의 10개의 말씀 (십계명)을 주심으로 그들과 결혼 언약을 맺으신다. 하나님의 백성, 당신의 신부의 정체성이 어떠 한지를 정확하게 말씀해 주고 계신 것이다. 10개의 말씀을 히브리어로 살펴보면, "~~하지 말라"가 아닌, "~~이 아니다"로 표현되어지고 있다.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신부이자 백성에게 여러 가지 행동을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너는 이러, 이러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살인, 간음, 거짓말, 도둑질, 탐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살인자가 아니요, 간음하는 자도 아니요, 거짓말 쟁이도 아니요, 도둑이나 남이 가진 것들을 탐욕하는 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나팔절로 돌아가자. 하나님께서는 레위기 23:24-25에서 나팔을 불어 기념하라고 하신다. 나팔을 불면 기억나는 것이 무엇인가? 출애굽기 19-20장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나팔소리로 가장 처음으로 나타난, 시내 산에서의 만왕의 왕, 만유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과의 결혼식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이다. 우리가 분주한 삶을 살아가면서 가장 쉽게 하는 것은 본질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멈춤" (샤밧)을 매 7일째 하지 않고 계속해서 분주함 가운데로 휘말려 들어가게 된다면,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실제 멈춤의 시간을 갖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모습, 보혈로 말미암은 새 피조물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말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끊임없이 기억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절기를 "도우미"로 주셨다. 나팔절은 세 번째 절기 "세트"의 시작점인데, 왕이신 하나님과의 결혼식을 기념하는, 다시 한번 신랑이신 조물주를 만나는 시간으로 주신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나팔절에 시편 89:15 읽고 묵상한다:

즐거운 소리를 아는 백성은 복이 있나니 / 행복하나니

여호와여 그들이 주의 얼굴 빛 안에서 다니리로다

여기서 "즐거운 소리"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위에서 언급한 "트루아"이다. 이 단어를 직역한다면 "나팔 소리"가 보다 더 정확한데, 이는 출애굽기 19-20장과 나팔절을 정확하게 연결하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나팔 소리를 아는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기서 나팔 소리를 "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안다, 알다는 히브리어로 야다이고, 경험적으로 알게된 앎을 의미하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야다라는 단어는 기억하다, 기념하다”, 그리고 사랑과 같이, 언약관계 안에서 사용되어지는 단어라는 것이다.

나팔 소리라고 했었을 때에는, 출애굽기 19-20장에서의 아름다운 사건을 말해주고 있다. 이집트에서 노예로 종살이했던 히브리인들이, 하나님의 강하신 팔로 말미암아 구속되었고, 또 홍해를 건너면서 구출되었으며, 시내 산 앞에서 그분의 음성과 임재가 드러나면서 결혼식이 이루어진다. 신랑이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셨고, 신부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알 때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다음 말씀이 말해주고 있다:

         "뭇 백성이 우레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

에 떨며 멀리 서서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

나이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

를 시험하고 너희로 (하나님을)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백성은 멀리 서 있고 모세는 하나님이 계신 흑암으로 가까이 가니라"

( 20:18-21)

이집트에서 오랜 시간동안 종 노릇하여 하나님을 아직 잘 알지 못하는 뭇 백성과 같이 우레와 점점 더 커지는 나팔 소리에 죽을까 두려워 떨면서 멀리 떨어져 있거나, 하나님의 훈련을 계속 받아와서 하나님을 이제 깊이 알아가고 있는 모세와 같이 나팔 소리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그분이 계신 곳으로 가까이 가거나,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복이 있나이다"라고 번역된 부분은 히브리어로 "복 되도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기쁘다, 행복하다"는 의미도 있다. 이 본문을 원어에 가깝게 다시 번역한다면, "기쁘도다, 행복하다, 나팔 소리를 아는 백성이여!"이다. 이러한 백성은 정말 복을 받은 백성이 아니겠는가? 모세와 같이 나팔 소리 안에서 왕이신 하나님의 음성을 알고 그분께 가까이 가는 백성이니, 기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모세와 같이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며 주님과 동행하는 자이니, "주의 얼굴 빛 안에서 걷고하나님의 얼굴을 삶에서 나타내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그 빛 안에서 걸으니,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존재인지를 알고 사는 백성인 것이다. 나팔 소리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살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분의 얼굴을 빛처럼 밝히 드러내며 사는 존재들이 된다. 진정한 증인으로 말이다.

즐거운 소리를 아는 백성은 행복하나니

여호와여 그들이 주의 얼굴 빛 안에서 다니리로다

시편 8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