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절에서 샤부옽 (Shavuot)까지 - 구속에서 결혼 언약까지

이스라엘에서는 65일과 6일에 "샤부옽"­­­ 모아딤(절기), 또는 오순절을 지내게 된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강론하시고, 승천하신지 10일 이후에 성령님이 강림하신 중요한 날이기도 하다.

히브리 성경에서는 오순절을 "샤부옽"이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이러하다. 샤부옽은 히브리 단어 "샤부아"의 복수형인데, 일주일 단위를 뜻하고 있다. 레위기 23 15-16절에 보면, 샤밭/안식일을 7번 지내고 (칠칠절), 하루를 더해서 총 50 (오순절)을 유월절 샤밭에서부터 하루, 하루 세어가도록 하나님께서 지시하셨다. “7” 이라는 숫자는 히브리 개념에서는 "완전함"을 말해주고 있는데, 7일을 일곱 번 지낸 후 (7x7) 하루를 더한다는 것은 무언가 완전함의 절정을 향해 하루, 하루, 그리고 첫 번째 샤밭 (첫 주)에서 일곱 번째 샤밭 (7번째 주)까지 기대하며 세어가는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재귀동사!) 변화를 경험하는 창조주 하나님의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샤부옽은 유월절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유월절의 어린 양을 통해서 이집트의 노예의 정체성에서 히브리 사람들을 구속하셔서 해방시켜 주셨다. 그러나 막연한 해방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 이들과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신부이자 하나님 왕국의 백성이 되기 위해 언약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셨다. 이들은 기쁨의 동산 에덴에서 잃어버린 인류의 진정한 정체성을, 페싸흐 모아딤(유월절기)의 구속역사를 통해 되찾게 되는데, 이제 하나님의 신부이자 백성된 정체성대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쳐주는 하나님의 말씀, 토라를 시내 산에서 샤부옽 절기 때 받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유월절에서 시작된 구속과 구원의 역사는 샤부옽으로 절정에 이르게 되면서, 하나님의 백성 또는 신부로서의 삶의 연습이 시작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샤부옽을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 토라—10개의 말씀(십계명)과 모세오경을 받은 날로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인 성경을 보면, 샤부옽이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10개의 말씀(십계명)을 비롯해 구체적인 하나님 나라의 라이프스타일을 법과 규례와 지시사항으로 주셨다는 대목은 없다. 그러나, 실제 출애굽한 때부터 시내 산에서 10개의 말씀을 받은 때까지를 계산해 보면, 50일이라는 시간이 대충 맞아 떨어지고 있다. 어쨌든 흥미로운 것은, 정통 종교 유대인들은 샤부옽이 시작되는 저녁부터 아침까지 밤을 세면서 토라를 읽고 공부한다는 것이다. 왜 이런 전통이 생겼을까?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목소리와도 같은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지시사항이 기록되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주어졌다는 것은 이들에게 너무나도 중대한 사건인 것이다. 밤새 토라를 읽고 공부하는 관습은 근대에 시작되었고, 오늘날까지 실천되어 종교 유대인들의 전통이 되었다. 그 이유는 대략 이러한 생각에서 나왔다. 현대 정통 유대인들은 출애굽기 19-20장을 토대로, 이스라엘 백성이(조상들이) 시내 산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의 말씀 토라를 받을 때에 올바른 태도와 준비로 받지 못했다고 믿고 있다.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해마다 해가 지면서부터 샤부옽이 시작되면, 이들은 하나님의 선물인 토라를 새롭게 받는 마음으로 밤새 기도하면서 말씀을 읽고 공부하게 되었다고 한다. 해지기 훨씬 전서부터 이들은 통곡의 벽에 모여들기도 하고, 예루살렘까지 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동네, 마을, 도시에 위치한 회당에 가서 밤을 셀 준비를 한다.

이것은 정통 유대인들의 전통에 불과하지만,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창조주의 목소리로 생각하면서, 새로운 생각과 마음의 태도, 자세로 다시 한번 정렬을 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정신없이 바쁘게 죽도록 일하면서 사는 현대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멈춤이요, 창조주의 정하신 약속의 시간 안으로 동의하면서 들어감으로 생명을 선택하는 변화의 길이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샤부옽에 성령 강림. 우연인가?

유월절로 시작해서 출애굽 한 후,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말씀, 토라를 받은 때가 샤부옽이라면, 예수님 당시로 와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영, 성령님을 똑같은 모에드(절기)인 샤부옽에 제자들에게 보내신 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샤부옽에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말씀, 토라를 주셨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의 부르심과 관련되어 있다. 이스라엘을 장자라고 부르시고 구속하시며 제사장 나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신 것에는 열방의 빛이 되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는 처음서부터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가족이 되기를 원하신 것이다. 놀랍게도 이와 똑같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지 (유월절에서부터 40일 되는 날에 승천하심) 10일 후 50일 되는 샤부옽에 하나님 아버지는 약속하신 성령님을 보내주셨다.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하나님의 증인, 다시 말하면 열방의 빛이 되기 위함이다.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에서 말하고 있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로고스), 그리고 발언하심으로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예수님을,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전하기 위해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보내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토라는 오직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의 언어이고, 그분 만이 저자로서 풀이해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4:26 말씀—“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이신 토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님이, 열방에 선포되고 전파되기 위해서 아버지 하나님은 정확히 샤부옽에 다시금 진리의 영을 보내주셨다. 정말 탁월하고도 정확하신 하나님의 계획이지 않은가!

 

 

오늘날 많은 믿는 유대인들은 성령님의 강림하심이 마가의 다락방이 아닌 성전산(성전이 위치한 곳)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첫 번째로 유대인들이 아침시간에 기도하기 위해 성전에 갔기 때문이다. 아침기도 시간을 히브리어로 "샤하맅"이라고 부르는데, 성령님께서 강림하셔서 120명의 제자들이 각각 다른 언어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증언했을 때 어떤 사람들은 술 취했다고 조롱했었다. 그 때 사도 베드로가,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2:15)—고 대답했다. 여기서 "제 삼 시"는 아침 9시를 말하기 때문에, 바로 아침기도 시간을 마친 후였을 것이다.

두 번째로,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가 쓴 누가복음의 끝부분을 보면,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 ( 24:50-53). 누가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성령님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열흘 동안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러니까 120명의 제자들이 모여서 예수님의 지시를 따라 약속하신 성령님을 기다렸던 장소는 성전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보통 성령님께서 다락방에 강림하셨다고 믿는 이유는 사도행전 1:13절에서 15절 말씀에 근거하고 있다: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심당원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런데 말씀을 살펴보면, 11명의 제자들이 그 당시 머물고 있었던 장소가 다락방이라고 말해주고 있고, 모두 남자들이었음을 볼 수 있다. 그 다음 14절에 11명의 제자들과 함께 여자들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의 아우들과 더불어 한마음으로 오로지 기도에 힘썼고, 15절에 종합적으로 모인 제자들의 수는 약 120명이라고 누가가 말해주고 있다. 13절과 14, 15절을 연이어 읽기 때문에 다락방에 120명이 모여서 한마음으로 기도했고, 바로 이곳에 성령님이 강림하셨다고 보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11명의 제자들이 머물렀던 장소와, 여자들을 포함한 모든 제자들이 함께 모여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약속하신 성령님을 기다렸던 장소는 누가복음 24장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성전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한 것 같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성전을 코 앞에 두고 개인 집에서 모여서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락방 자료화면)

세 번째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유대인들이었고,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 토라를 그대로 따르는 자들이었다. 성령님이 강림하신 날은 특히 샤부옽 모에드(절기)였기 때문에, 당연히 아침시간에는 성전에 올라가서 번제를 드리고 기도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유월절/무교절, 그리고 샤부옽, 그리고 장막절에는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도록 명령하셨기 때문에, 120명의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전에 있었을 것이고, 또 사도행전에서 기록한 바와 같이 사방에서 몰려온 유대인 순례자들 (예루살렘 인구 25,000명의 4-5100!)이 성전에 그렇게도 많았던 이유이다. 또 사도행전 2:1을 보면,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라고 말하고 있는데, 성전이라고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성령님께서 강림하신 후 베드로의 말씀 선포를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의 수가 3,000명이라고 하고 있다. 성전과 그 뜰, 그리고 솔로몬의 행각이 어마어마하게 큰 장소였기 때문에 보통 그 당시 여러 랍비들의 가르침은 성전 이곳, 저곳에서 이루어졌다. 예수님도 유대인 랍비로서 성전에서 가르치셨고, 제자인 베드로도 그렇게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46절에 보면, 모든 믿는 사람들이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라고 증언하고 있다. 제자들의 수가 120명이었을 때도 그랬고, 3,000명이 넘었을 때도 동일하게 모인 장소는 성전이었던 것이다.

 

l  샤부옽은 히브리 단어 "샤부아"의 복수형인데, 일주일 단위를 뜻하고 있다. 사실 하루라는 개념은 해가 뜨고 지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고, 또 한 달의 개념은 달의 움직임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한 해의 개념은 해의 위치에 따라서 또한 알 수 있는데, 일주일이라는 개념은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통해서 나타나지 않는 유일한 시간 개념이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하시고 7일째 인류에게 선물로 주신 샤밭, 또는 안식일을 통해서 일주일이라는 개념이 이 세상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l  샤부옽은 농사, 특히 추수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Harvest Feast; Feast of First Fruits; 신명기 26).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언약백성으로 살 때에 땅에서 소산이 풍성할 것이고, 언약에 신실하지 못해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의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 부정부패의 나라가 되었을 때는 비를 주시지 않는 기근과 흉년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이다 (신명기 11). 이러한 맥락에서, 샤부옽 절기에 하나님께 첫 소산, 첫 열매를 기쁨과 감사함으로 드린다는 말은 곧 언약에 신실한 삶,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풍성한 추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걸맞게, 왕의 신부로 걸맞게 살았음을 나타내는 증거라고도 말할 수 있다.

l  애굽의 노예였던 히브리 백성.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구출하심으로 히브리 백성은 창조주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고 있는 "이스라엘"이라는 왕국으로 탄생하게 되고, 400년 묵은 애굽의 사고체계와 세계관, 가치관 등이 하나님의 놀라우신 방법으로 인해 광야에서 "물빼기" 작업에 들어간다. 그래야 지 만이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을 올바로 나타내는 열방의 빛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샤부옽에 히브리 노예들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신부로 하나님과 결혼식을 올리고, 이 아름다운 언약관계를 나타내는 "크투바"—10가지 하나님의 말씀(십계명)신랑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된다. 더 이상의 노예가 아닌, 하나님의 신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놀라운 순간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 백성이요, 신부가 된다는 것은 열방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 토라를 삶으로 정확하게 반사하고 나타내는 책임이 있다. 이러한 진정한 "증인"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l  하늘에서 불로 하나님의 임재가 처음으로 나타난 사건은, 앞서 나눈 것과 같이, 샤부옽 모에드(절기)에 일어났고, 또 구체적으로 레위기 9장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지시 그대로 성막을 다 짓고, 그 안에 들어갈 가구들도 다 설치한 후, 대제사장 아론과 그 아들들이 손이 가득 채워지는기름 부으심을 받은 후에 일어났다 :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 지르며 엎드렸더라 " (9:23-24). 그리고 두 번째로 똑같은 샤부옽 모에드에 하늘에서 불로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난 사건이 바로 성령님께서 강림한 사건이다. 하나님께서 지리적으로 3개의 대륙의 교차로인 이스라엘 땅을 열방 민족들이 지나가면서 예루살렘의 성전을 통해 하나님의 실제적인 임재와 하나님 나라의 법도와 움직임을 목격하게 하셨다면, 이제는 열방으로 흩으셔야만 했기 때문에 (실제 주후 70년에 로마로 인해 하나님의 집/성전이 파괴됨), 개인차원에서의 믿는 자들, 즉 성령님을 모신 하나님의 성전인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임재가 불의 형태로 임하게 된 것이다.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2:3) 하나님의 성막은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모든 속성을 나타내 알리는 역할을 해 왔다. 이제 예루살렘에서 땅끝까지 흩어져 가야 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동일한 역할이 주어졌고, 이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약속하신 성령님을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