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코비드 19 인한 인생의 격변은 이전에 없었던 대대적 사건이다이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이번 펜데믹에 대해서 "전무후무"라는 표현을 없다. "전무"에는 동의가 되지만 "후무"에는 동의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불행하게도 앞으로 이런저런 모습으로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이름은 조금 바뀔지 모르지만계속해서 일어날 일이라는 암울한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유대광야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아라드에서 겪은 코비드-19 펜데믹 사건은 나로 하여금 인생의 후반부에 대해 어떻게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을 이상 질질 끌지 않고맞닥뜨리고 대면하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물론 바이러스가 그렇게 했다는 말은 아니지만 세계가 너무도 가려진 정보신뢰할 없는 주류 미디어의 식상하고도 똑같은 보도정부경제 권력자들과 자기이익이 꼬인 소위 과학자들의사들의 파워게임 등등 가운데 진실은 가려져 땅에 쓰레기처럼 버려지고검열 문화로 인해 진실을 말하려 해도 사방이 막히는 것만 같은 사회 분위기 가운데 끊임없이 심고 심는 것은 두려움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어떤 생각과 선택과 결정을 하게 되는지 무서운 결과를 목격했기 때문에 암울하면서도 동시에 정신이 바짝 수밖에 없었다하나님 아버지께서 위기를 통해 세상의 현실을 보게 하시고 많은 것을 고민하고 생각하게 인도하시는 2020 - 2021년인 것은 분명하다그래서 너무나도 감사하다.

 

블로그를 만들게 되면서우리 블로그의 이름을 뭐라고 할까 상호쌤과 함께 고민하다가 가장 최근그러니까 지난 샤부옷 (5 17)--칠칠절의 의미를 말씀을 통해 살펴보면서 나에게 일어난 지진과 같은 사건에 기점을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이번 샤부옷에 마치 하늘로부터 주어진 계시와 같은 사건이 있었는데 이야기는 따로 기록해야 것이다그러나 한가지 이야기할 있는 토라의 그림진리의 그림이 있는데바로 샤부옷-오순절에 성전 산에서 믿는 사람들 각각 위에 하늘의  임했다는 것이다레위기 9--하나님의 거처인 땅의 장막에 임한 동일한 불이 1,500 후에 뿔뿔이 흩어질 거룩한 산돌들 (벧전2:5),  예수님을 메시아이스라엘의 왕으로 믿는 제자들 위에 임한 그림이다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보다 불의 이미지이다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불은 어떤 기능역할이 있는 것일까?

 

사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불과 하나님 자신을 뗄래야 놓을 없다분리시킬 없고분리 시켜 생각해서도 안된다 그런가이번 샤부옷의 기간을 지내면서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의 속성이 바로 순전한 빛이요너무 순전해서 빛에서 나오는 불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셨다무슨 뜻인가나는 "순전한 빛의 " 진리의 모습이라고 제안하고 싶다진리의 속성이라고 수도 있겠다당연한 논리요사실이지만진리와 거짓은 공존할 없고조금의 거짓도 진리 옆에 붙어있을 수도존재할 수도 없다진리에는 거짓이 없다이러한 속성을 불과 연관지어 생각해 본다면진리의 속성은 "순전한 빛의 "이어서거짓이 주변에 있으면 진리의 순전함이 거짓을 태워버릴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진리에는 오직 진리만 있을 있는 어떤 원리라고 수도 있겠다.

 

말씀을 보면 "소멸하는 " 현상은 하나님이 당신의 의지를 행하셔서 일어나는 결과라기 보다보편적으로 하나님의 속성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물론 말씀에서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소멸하는 불이 하나님으로부터 나가는 것을 있다그러나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 의도로 하나님께서 손가락으로 "!"하실 손가락이나 입에서 불이 레이저처럼 나가서 범죄자를 소멸하는 그런 그림은 아니다하나님은 진리이기 때문에 거짓이 근처에 얼씬거리면 "순전한 빛의 " 하나님으로부터 나가서 가까이 접근한 거짓과 기만이 완전히 소멸되는 것이다.

 

내가 굳이 진리의 불을 "순전한 빛의 "이라고 자자하게 설명하는 이유는우리가 생각하는 일상생활에서의 불과 진리의 불은 다르기 때문이다우리가 경험적으로 아는 불은무엇이든 불이 붙은 그것을 태우고불에 그것은 타서 없어져 보통 재만 남는다하나님의 "순전한 빛의 " 거짓과 기만과 진리가 아닌 모든 것을 태우는데 멈추지 못하고 완전히 소멸하지만진리가 중심에 있으면 거짓을 태우면서순전한 빛으로 인해 더욱 정결하게 되어 빛을 비추는 존재가 된다고 말씀을 통해서 결론을 내린다.

 

블로그 이름으로 돌아가면... 하나님의 진리하나님의 "순전한 빛의 " 생각하면서, 3가지 이름을 생각해 보았다.

(1) 불덤불말씀은 출애굽기 3 2절과 4-5모세가 장인 이드로의 양떼를 이끌고 하나님의 , "호렙" 갔을 일어난 사건이  "순전한 빛의 " 상기시켜 줬다.

          주의 천사가 가시덤불 가운데서 나온 불꽃 속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그가 보니보라가시덤불이 불로 타나 가시덤불은 소멸되지 않더라... 4 ...하나님께서 가시덤불 가운데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기를 "모세야모세야." 하시므로 그가 말씀 드리기를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5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여기로 가까이 다가서지 말고 발에서 신을 벗으라이는 네가 있는 곳이 거룩한 땅이니라." 하시더라.

보통 한글 번역본을 보면 "떨기나무"라고 하는데사실 그게 뭔지 모르겠다광야에서 흔히 있는 덤불은 뭔지 알겠다어쨌든모세가 양떼를 이끌고 가다가 희귀한 광경을 보고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가던 길에서 돌아서서 타오르는 덤불을 향해 다가갔다. "보라가시덤불이 불로 타나 가시덤불은 소멸되지 않더라." 하나님의 "순전한 빛의 " 이러한 모습이라는 것을 묘사하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나아가 하나님은 모세에게 당신의 가까이 오지 말라고 경고하시면서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신다왜냐하면 피조세계와 완전히 구분된 하나님의 영역(?),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이기 때문에--"네가 있는 곳이 거룩한 땅이니라." 부패하고 타락한 인류세상모든 피조세계와 구분되시는 한분이신 하나님이 이러한 경고를 하신 것은모세가 처음으로 하나님과 일대일로 대면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모세가 다치지 않도록 거리를 두게 하신 것이다사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모세가 하나님을 육안으로 봤다가는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출애굽기 33 20--하나님께서 출애굽 시키신 이스라엘 백성을 모세가 이끌고 다시금 시내  (=호렙 )으로 와서 10개의 말씀을 받았지만곧바로 금송아지 우상숭배 사건이 일어났다 후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를 요청한 모세에게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네가 얼굴을 없으니 이는 나를 보고서 자가 아무도 없음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지만하나님은 곧바로 모세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시면서 하나님의 이름이 나타내고 있는 당신의 속성을 모세 뿐만 아니라 천하에 계시해 주신다 (34:5-7). 그래서 오늘날 나도 하나님의 속성을 있게 되었다 나아가 모세는 떨기나무에서 시작하여 번이고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면서 대화를 했는데, "순전한 빛의 " 소멸되지 않았다하나님은 모세를 데려가시면서 이렇게까지 증언하신다: " 후에 이스라엘에는 주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모세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으니..." (34:10) 어떻게 그럴 있었을까모세가 준수하고 괜찮은 사람이라서나름 의롭기 때문에 소멸되지 않고 하나님의 "순전한 빛의 " 바라볼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그래서 나는 "불타는 덤불"이라는 이름에 100% 만족할 없었고다음 이름을 생각하게 되었다.

 

(2)  & 에메트히브리어로 은혜와 진리를 말한다결국 "순전한 빛의 " 소멸되지 않고 진리이신 하나님을 만나려면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모세가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고도 죽지 않았던 이유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았고그는 그저 은혜를 붙잡았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모세는 창조주 하나님을 경험적으로 알아가게 되었기 때문에 은혜와 긍휼의 보좌로 담대히 나아가는 위대한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었다 진리를 그대로 반영하는 말씀이 바로 히브리서 4 16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갑시다그래서 우리는 자비를 받고은혜를 입어서 제때에 주시는 도움을 받도록 합시다."

 

모세는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토라를 받았고하나님의 토라를 통해서 인류는 원래 창조된 모습으로진리의 형상으로 회복될 있는  주어졌다그런데 모세시대 1,500 지금의 2,000 전에는 나아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토라가 살아계신 말씀으로 오셔서 온전한 회복이 이루어지고확실한 진리의 회복의 길을 있게 하셨으니할렐루야!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므로 우리가 그의 영광 ("순전한 빛의 "??) 보니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으로 은혜와 진리 (헨과 에메트) 충만하더라... 아무도 어느 때나 하나님을 사람이 없지만 아버지의 안에 계신 독생자이신 하나님이 그분을 분명히 밝히셨느니라." (1:14,18) 아버지 하나님의 토라가 어떻게 살아져야 하는지 직접 가르치시고 삶으로 보여주신 아들이신 하나님 예슈아가 오셨고죄를 용서하셔서 우리를 창조된 디자인과 마땅히 살아야할 장소--하나님 안으로 온전히 회복하기 위해 십자가 처형으로 죽으셨으며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의 능력으로 부활하셔서 다시 사셨다. "나는 이요 진리 생명이라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사람은 아무도 없느니라." (14:6) 인류는 놀라운 은혜를 입었고진리를 있는 길이 주어졌으며 피조물로서 생명을 지닌 진정한 삶을 있게 되었다진리의 말씀을 믿어서 매일 살아냄으로 말이다.

          19 그러므로 형제들아우리에게는 예수의 피로 인하여 지성소에 들어갈 담력 있나니           20 이는 그가 휘장 그의 육체를 통해서 새롭고 살아 있는  우리를 위해 바치셨음이라. 21 또한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대제사장이 계시니 22 우리가 믿음의 온전한 확신 가운데서 진실한 마음 / 진리의 생각으로 다가가자이는 우리의 마음/생각은 악한 양심으로부터 피뿌림을 받았고 우리의 몸은 깨끗한 물로 씻겨졌기 때문이라.  (10:19-22)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긍휼로 말미암아 이를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순전한 빛의 " 소멸되지는 않지만 안에 거짓된 생각들태도기만 진리가 아닌 것들은 모두 소멸한다. " & 에메트"라는 제목이 보다 정확해서 좋기는 하면서도, "순전한 빛의 " 안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행하시기 원하시는 --진리가 아닌 모든 것을 소멸하는 것을 표현하지는 않기에 번째 이름을 생각하게 되었다.

 

(3) -에쉬히브리어로 " " (정관사 ""), 하나님의 "순전한 빛의 " 뜻하는 제목이다예슈아의 십자가의 공로로 말미암아 피조물로 하늘에서 거듭나 온전히 회복된 사람들은 순간부터 이신 예슈아를 따라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진정한 생명으로 새로운 인생을 있게 되었다어떻게 매일매일 길이신 예슈아를 따라 진정한 생명을 있는가기록된 말씀의 진리 날마다순간순간마다 연습하고 연습하는 것이다가능하다 있고 있다어떻게?  "...진리의 영이신 분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리라..." (16:13) 2,000 샤부옷에 영이신 하나님이 강림하셨고내가 예슈아를 나의 구속자요 구원자이시며나의 창조주요 왕이신 하나님으로 믿고 영접했을 내가 아버지-아들-영이신 하나님 안에그분이 안에 오셔서 거하신다진리의 영이 이제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그분의 "순전한 빛의 " 두뇌와 세포 메모리에 물리적으로 각인된 부패한 생각과 태도와 신념과 경험을 소멸할 수밖에 없다내가 한없이 미루거나 불신해서 거부하고 반항하고 무시하지만 않는다면불에 데어도 욱신거리고 아픈데살갗이살이몸의 일부가 탔는데 어떻게 아플 수가 있겠는가진리를 만나기 전까지 ""라고 생각하여 형성하고 가꾸고 방어한 존재가 이제 예슈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 장사되었으나 존재가 오래 동안 두뇌에 생명을 다해 각인시킨 거짓과 기만과 오만이 물리적으로 메모리로 남아있기 때문에 "순전한 빛의 " 이를 태우는 작업이 계속 이루어져야만 한다 소멸시키는 고통스러운 작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길은 무엇인가? "...너희가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게 되리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8:31-32) 말씀이 계시하고 있는 진리를 바로 알아 매일매일 순간마다 말씀의 지시와 계명을 선택하여 준행하는 것이다그리고 안에 견고하게 뿌리내린 거짓과 기만과 오만진리가 아닌 모든 크고 작은 생각들이 작동하는 것을 멈추는 (샤밭것이다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너무도 분명하게 믿는 자들에게 강하게 권면하고 있는 것을 있다:

          형제자매 여러분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제사(코르반)으로 드리십시오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2 여러분은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거룩하고 살아있는 코르반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계속해서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집의 제단 하나님의 하나님의 "순전한 빛의 위에 나를 날마다 두는 합당한 예배 행위다.

 

하나님의 "순전한 빛의 " 하나의 그림으로 너무도 확실하게 그려주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이야기를 끝으로 하겠다.

 

사드락메삭아벳느고 - 다니엘 3 15-27

15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여 어느 때라도...모든 악기들의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려 내가 세운 형상에 경배하면 좋거니와만일 너희가 경배하지 아니하면 너희는 즉시 불타는 뜨거운 용광로 속으로 던져질 것이니그러면 손에서 너희를 구해 신이 누구겠느냐?" 하니 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 느부갓네살이여우리가 일에 대하여 왕께 담대히 말하나이다. 17 만일 그렇게 된다 해도 우리가 섬기는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불타는 뜨거운 용광로에서 우리를 구해 내실 있으며 왕이여 분께서는 우리를 왕의 손에서 구해 내실 것이니이다. 18 그러나 만일 그렇게 되지 아니할지라도 왕이여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할 것이며왕께서 세우신 금상에 경배하지도 아니할 것을 왕께서는 아소서." 하더라. 19 그러자 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 차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한 그의 얼굴 모양이 변하더라그러므로 그가 명령하여 말하기를 용광로를 평상시에 뜨거웠던 것보다 배나 뜨겁게 하라고 하더라. 20 왕이 자기 군대에서 가장 힘센 사람들에게 명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묶어서 불타는 뜨거운 용광로 속으로 던져 넣으라고 하니 21  사람들이 그들의 겉옷과 속옷과 모자와 다른 옷들을 입은 채로 묶여서 불타는 뜨거운 용광로 가운데에 던져졌더라. 22 왕의 명령이 엄격하여 용광로가 심히 뜨거우므로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들어 사람들을 태워 죽였더라. 23 그리고 사람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불타는 뜨거운 용광로 가운데로 떨어졌더라. 24 그때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그의 자문관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우리가 사람을 묶어서 가운데로 던지지 아니하였느냐?" 하니그들이 대답하여 왕에게 말하기를 " 왕이여옳소이다." 하더라. 25 왕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보라내가 보니 사람이 풀려서 가운데서 걸어다니고 있는데 그들이 다치지도 않았으며 넷째의 모습은 신의 아들과 같도다." 하더라. 26 그때에 느부갓네살이 불타는 뜨거운 용광로 입구에 가까이 와서 일러 말하기를 "너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야나와서 이리 오라." 하니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가운데서 나오더라. 27 고관들과 총독들과 군대 대장들과 왕의 의논자들이 함께 모여 사람들을 보니불이 사람들의 몸에는 힘을 쓰지 못했으며 그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그슬리지 못하였고 그들의 옷도 변하지 않았으며 그들에게 불탄 냄새 조차 없더라.

 

위의 진리의 말씀들을 생각하면서 눈을 감고 이야기를 상상해 보면 센세이셔널 하다!

그러나 저러나 블로그 이름은 뭘로 해야하나???